달콤한세상

명품 브랜드 구찌오 구찌 이야기

명품 브랜드 구찌오 구찌 이야기

#달콤한 세상 : 라이프

명품 브랜드
구찌오 구찌 이야기

많은 분들이 이름을 알고 계신 럭셔리 명품 브랜드 GUCCI(구찌). 핸드백 – 지갑, 가방, 시계 등 다양한 아이템을 구비하고 있고, 이 밖에 다양한 분야까지 취급하는 세계 최고의 명품 브랜드입니다.
이 글에서는 그런 유명 브랜드의 창업자, Guccio Gucci(구찌오 구찌)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본문 이미지 출처 : Gucci 코리아 홈페이지(gucci.com)

구찌오 구찌의 과거

1881년 럭셔리 브랜드 GUCCI(구찌)의 창업자 Guccio Guccio 구찌는 피렌체에서 밀짚모자를 제조하는 가브리엘로라는 영세모자 제조회사를 운영하는 가브리엘로 구찌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구찌오 구찌는 젊을 때 런던에서 일을 시작하기로 결심하고 증기선의 기관조수로 일하면서 런던으로 향했습니다. 런던에서 말단 직원이긴 하지만 최고급 호텔인 사보이 호텔에서 일자리를 얻게 됩니다.

구찌오 구찌씨는 사보이 호텔 설거지 후에 1층 웨이터로 일하게 됩니다. 낮은 임금이었지만 사보이 호텔은 왕후귀족 호텔이었기 때문에 큰 불편함 없이 일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왕후 귀족의 행동을 가까이에서 자세히 볼 수 있었기에 소지품이나 사물에 대한 사고방식 등을 배울 수 있게 됩니다. 이어 구치오 씨가 배운 것은 원가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오히려 상품의 가격이 비쌀수록 그것을 소유하는것의 가치도 높아진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경험은 후의 GUCCI(구찌)의 브랜드 비즈니스에 크게 활용됩니다. 많은 것을 배운 사보이 호텔을 떠나 구찌오 씨는 1901년 피렌체로 다시 돌아옵니다.

GUCCI(구찌)의 시작

귀국 후 몇몇 상점에서 일하지만 제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면서 징집되어 버립니다.
전쟁 후 1919년에 피렌체로 돌아온 구찌오는, 고급 가죽 상품 가게인 '프란치'에서, 가죽 취급법을 습득합니다.

이 경험을 살려, 1922년에 피렌체의 파리네오 거리에 자신의 가게를 열고, 1923년에 본인의 이름을 딴 「GUCCI(구찌)」상점을 열게됩니다. 이 당시 GUCCI(구찌)가 주로 다룬 것은 영국에서 수입한 가방과 그 수리입니다.

이 가방의 수리로 인해서 깨지기 쉬운 부분이나 어떻게 만들면 깨지지 않는지 여행가방 만드는 방법을 연구할 수 있었습니다. 구치오씨는 사용하기 쉽고 튼튼한 가방을 만드는 법을 터득하게 됩니다. 하지만 1953년에 구치오씨는 72년의 생애를 마감했습니다.

구찌오 구찌 일화

구찌오 씨에게는 매우 많은 일화가 남아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이탈리아 방문 중인 엘리자베스 2세가 가게를 방문했을 때 여왕의 시종이 그에게 뭔가 폐하에게 선물을 주라고 진언해서 가방을 여왕에게 주었는데도 여왕 일행이 떠난 뒤 보도진이 아직도 있는데도 돈도 주지 않는 거지는 이제 오지 말라고 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일화를 겪으면서도 구치오 씨는 장인들로부터 신뢰를 받았고, 그도 장인들을 사랑했습니다. 그 증거로 구찌에는 다른 고급 브랜드와 달리 재료비만 내면 장인이 아내나 딸, 애인에게 가방을 만들어줘도 되는 날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는 GUCCI(구찌)의 제품이 장인의 가족에게 좀처럼 손이 닿기 어려운 것이므로 구찌오 씨가 자발적으로 생각해 낸 장인의 가족에 대한 서비스라고 합니다. 장인을 사랑한 창업자를 가진 브랜드 GUCCI(구찌)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구찌오 구찌 명언

구찌 아이템을 소유하고 있다면 알고 있어야 할 구찌오 구찌의 명언이 있습니다.
Quality is remembered long after price is forgotten!
품질은 가격을 잊어버린 후에도 오랫동안 기억된다!

이말은 유명한 구찌오 구찌의 명언입니다. 원가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오히려 상품의 가격이 비쌀수록 그것을 소유하는 것의 가치도 높아진다라는 고급 브랜드의 가치관을 잘 나타내는 명언입니다.

구찌오 가문의 가훈

태어나면서부터 맛보는 럭셔리 맛보는 구찌오 가문의 가훈이 있습니다.
"아이에게는 우유보다 가죽 냄새를 맡게 하라!"

구찌오는 구찌 집안에서 태어난 자에게는 우유 냄새보다 가죽 냄새를 맡게 하는 것입니다. 그게 그 아이의 장래를 결정짓는 향기가 된다!라며 진짜 가죽 냄새를 맡게 했습니다. 태어나면서 부터 럭셔리를 맛보게 한 것입니다.

장남 알도구치도, 이 가훈을, 구치오의 손자에 해당하는 조르조 파올로·로베르트 등에게 계승했고, 손자 로베르트는 아버지 알도에 대해 「우리 아들들은, 집(우유 냄새)이라기보다 회사(가죽 냄새)에서 길러졌습니다.

장인을 대하는 자세

엘리자베스 2세의 일화를 겪으며 구치오 씨는 장인들로부터 신뢰를 받았고, 그도 장인들을 사랑했습니다. 그 증거로, 구찌가 아직 이 정도 큰 기업이 되기 전인 1970년대 무렵, 공방에는 130명의 장인이 일하고 있던 큰 가구였지만, 이 공방에서 장인이 떠나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먼저, 직장 환경 자체가 매우 호화롭고 마치 미술관에 있는 듯한 개방적이고 예술적인 공간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일단 봉직하면 경기 좋고 나쁨에 상관없이 종신고용이 보장됐습니다.

게다가 일찌기 구찌에는 다른 고급 브랜드와는 달리, 「장인이 재료비만으로 가족이나 연인에게 가방을 만들어도 좋은 날」이 있었다고 합니다. 장인의 월급으로는 좀처럼 손이 닿지 않는 구찌 가방이 장인 가족의 손에 들어가도록 하는 배려는 장인을 사랑하는 구찌만의 것입니다.

돈도 안 내는 높은 사람에게 가방을 줄 바에야 열심히 일하고 있는 장인이나 장인 가족에게 주고 싶어서입니다.


이 처럼 명품으로 인정받을 수 밖에 없는 많은 요소들이 있기에 전세계인들에 많은 사랑을 받은 명품 브랜드로서 자리매김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구찌오 구찌의 이야기를 알고 아이템을 소유하는 것과, 모르고 소유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으니 이제 당신이 습득한 지식을 지인들에게 공유해보세요.

TODAY Top 10

달콤한 세상 방문자가 가장 많이 본 게시물 오늘의 베스트입니다.

공유하기 링크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